홍범도 장군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영웅 중 한 명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봉오동 전투의 승리자로, 독립군을 이끌며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공이 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영광만 가득하지 않았다. 공산당 이력을 두고 사회적인 논란이 시끄럽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홍범도 장군의 업적과 논란에 대해 알아보겠다.
홍범도 장군의 출생과 유년시절
홍범도 장군은 1894년 3월 23일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홍영식이라는 목사였고, 어머니는 김옥순이라는 교사였다. 홍범도 장군은 어려서부터 용맹하고 지혜로운 아이였다고 한다.
그는 6살 때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9살 때에는 중국어와 영어를 익혔다. 그는 12살 때부터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있었고,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희생하고 있었다. 홍범도 장군은 이들의 희생정신에 감동받아, 나중에 독립군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홍범도 장군의 독립군 활동
홍범도 장군은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독립군으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1911년에 중국으로 건너가서 신한청년단에 가입했다. 신한청년단은 독립운동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홍범도 장군은 이 조직에서 군사훈련을 받았고, 여러 번의 전투에 참여했다.
그는 1919년에 발생한 삼일운동에도 참여했다. 삼일운동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독립운동이었다. 홍범도 장군은 이 운동에서 일본 경찰과 싸우면서 많은 부상을 입었다.
1920년, 홍범도 장군은 한인독립당에 가입했다. 한인독립당은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독립운동 조직이었다. 홍범도 장군은 이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는 1921년에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소련으로 갔다가, 1922년에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중국에서 동북공화국을 선포하려던 계획에 참여했다. 동북공화국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동북지방을 합쳐서 만들려고 했던 나라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패했다.
1926년, 홍범도 장군은 한국독립군에 가입했다. 한국독립군은 독립운동을 위해 만들어진 군대였다. 홍범도 장군은 이 군대에서 지휘관이 되었다. 그는 1927년에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독립군의 영웅이 되었다. 그는 1930년에 봉오동 전투에서도 일본군을 크게 무찌르면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봉오동 전투는 독립군이 일본군에게 가장 큰 승리를 거둔 전투였다.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논란
홍범도 장군은 독립군의 영웅이었지만, 그의 공산당 이력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그가 공산주의를 지지하고, 소련과 중국과 협력하려고 했다고 비난했다. 그들은 그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를 위해 싸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가 공산주의를 지지한 것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 때문이라고 변호했다. 그들은 그가 공산주의를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추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논란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그를 국가배신자로 몰아세우고, 그의 업적을 부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를 국민영웅으로 칭찬하고, 그의 공로를 인정하려고 한다. 홍범도 장군의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뚜렷하지 않다.
홍범도 장군의 죽음과 유해
홍범도 장군은 1943년 10월 25일 중국에서 죽었다. 그는 일본군에게 체포되기 직전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유해를 우리나라로 가져가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일본군은 그의 유해를 앗아가서,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게 했다.
그 후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찾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유해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16년에는 중국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로 추정되는 뼈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DNA 검사 결과, 이 뼈는 홍범도 장군의 것이 아니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유해가 언젠가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홍범도 장군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이자 국민영웅이다. 그는 일본의 침략과 억압에 맞서 싸우고, 우리나라의 자주성과 통일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우리의 역사와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아직도 일본의 손에 있다. 일본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인도하거나, 묻힌 장소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정신을 무시하고, 홍범도 장군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태도에 분노하고, 항거해야 한다.
우리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우리나라로 돌아오면, 적절한 장소에 안장하고, 그의 공헌과 정신을 기리고, 후세에 전해야 한다. 우리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며, 그의 영혼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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