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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으로 밀어붙이는 인해전술: 실제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포츈쿠키§ 2023. 8. 19.

안녕하세요. 오늘은 인해전술이라는 군사 전략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상자가 50만명을 넘어섰다고 하죠.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인해전술은 전쟁에서 많이 사용되는 전략 중 하나이며, 적보다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는 측이 병력 숫자의 우세를 이용하여 적의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전술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인해전술은 단순히 병력의 양만으로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인해전술

인해전술 필요 요소

  • 병력의 집중: 인해전술을 수행할 때는 적의 약점을 찾아서 병력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적의 방어선을 돌파할 수 있는 만큼의 병력을 배치하고, 나머지 병력은 적의 후방을 공격하거나 방어에 사용합니다. 병력의 집중은 적의 저항을 압도하고, 전선을 뚫고,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 지형과 날씨의 활용: 인해전술을 수행할 때는 지형과 날씨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지형과 날씨는 병력의 이동과 전투력에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산악 지형이나 눈이 많은 날씨는 병력의 이동을 어렵게 하고, 적의 방어를 강화시킵니다. 반대로, 평지나 맑은 날씨는 병력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고, 적의 방어를 약화시킵니다. 따라서 인해전술을 수행할 때는 지형과 날씨에 따라 병력의 배치와 공격 시점을 결정해야 합니다.
  • 물자와 보급의 확보: 인해전술을 수행할 때는 물자와 보급이 충분해야 합니다. 인해전술은 많은 병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물자와 보급이 부족하면 전투력이 저하되고, 병력의 유지가 어려워집니다. 예를 들어, 탄약이나 식량이 부족하면 병사들은 전투에 집중할 수 없고, 퇴각하거나 항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해전술을 수행할 때는 물자와 보급을 확보하고,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인해전술 실제 역사적 사례

인해전술은 역사적으로 많은 전쟁에서 사용된 전략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소련에게 가한 바바로사 작전입니다.

 

 

바바로사 작전은 1941년 6월 22일부터 1942년 5월까지 진행된 독일의 소련 침공 작전입니다. 독일은 약 300만 명의 병력과 3천 대의 전차, 2천 대의 비행기를 동원하여 소련의 서부 전선을 공격했습니다. 독일은 숫자적으로 우세한 병력을 이용하여 소련의 방어선을 빠르게 돌파하고,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 등의 주요 도시를 목표로 했습니다.

바바로사 작전의 성공과 실패

 

 

바바로사 작전은 초기에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독일은 소련의 방어선을 쉽게 뚫고, 많은 포로와 물자를 확보했습니다. 소련은 대규모의 피해와 혼란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바바로사 작전은 결국 실패에 끝났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소련의 저항: 소련은 독일의 공격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했습니다. 소련은 병력을 재편성하고, 새로운 지도자들을 선출했습니다. 소련은 독일의 공격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예를 들어, 모스크바 방어전에서는 시민들이 자원하여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는 공장이나 건물을 방어 요새로 사용했습니다. 소련은 독일의 공격을 견디고, 반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 지형과 날씨의 변화: 바바로사 작전이 진행될수록, 지형과 날씨는 독일에게 불리해졌습니다. 독일은 소련의 광대한 영토를 횡단하면서, 병력의 이동과 보급이 어려워졌습니다. 특히, 1941년 10월부터 시작된 겨울은 독일에게 치명적인 타격이었습니다. 독일은 겨울에 대비한 장비나 의복이 부족했고, 많은 병사들이 추위와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반면, 소련은 겨울에 익숙하고, 장비나 의복도 적절했습니다. 소련은 겨울을 이용하여 독일의 공격을 저지하고, 반격을 가했습니다.
  • 물자와 보급의 부족: 바바로사 작전이 오래 진행될수록, 독일은 물자와 보급이 부족해졌습니다. 독일은 소련에서 확보한 물자와 보급이 충분하지 않았고, 원국에서 공급하는 물자와 보급도 지연되거나 파괴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는 독일의 제6군이 포위되어 공중 보급을 받았지만, 그런 것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은 물자와 보급이 부족하면서 전투력이 저하되고, 병력의 유지가 어려워졌습니다. 이에 반해, 소련은 물자와 보급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과의 대여법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소련에게 무기나 탄약, 식량, 연료 등을 공급했습니다. 소련은 이러한 외부 지원을 통해 전력을 회복하고, 독일에게 우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 전략과 목표의 변화: 바바로사 작전이 실패하면서, 독일의 전략과 목표는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은 처음에는 소련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인 모스크바를 목표로 했지만, 후에는 자원이 풍부한 남부 지역을 목표로 바꾸었습니다. 독일은 남부 지역에서 석유나 철광석 등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병력의 분산과 전선의 길어짐을 초래했습니다. 독일은 전선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소련의 반격에 취약해졌습니다. 또한, 독일은 바바로사 작전이 실패한 후에도 소련과의 전쟁을 계속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독일의 전력을 과소평가하고, 소련의 전력을 과대평가한 것이었습니다. 독일은 소련과의 전쟁을 계속하면서 다른 전선에서도 전쟁을 벌여야 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전력을 고갈시켰습니다.

바바로사 작전은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바바로사 작전은 독일에게 큰 희망이었지만, 결국 큰 절망이 되었습니다. 바바로사 작전은 역사에서 가장 크고 잔혹한 전쟁 중 하나였습니다. 바바로사 작전은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낳았습니다. 바바로사 작전은 인류가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되는 비극이었습니다.


최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정세를 보면 러시아가 압도적인 병력 수를 바탕으로 인해전술 전략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럴 수록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빨리 전쟁이 종결되어 이런 비극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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